‘신지승 감독‧ 아내 이은경 감독’ 신장르개척
부산 둔치도 도자기마을! 9월 1일부터 7일간
韓최고 ‘천백광’ 도예가문’ 조명 다양한 행사
프랑스, 호주, 파키스탄 등 10개국 감독참석
구글번역기 도움으로 ‘감독과의 이색적 대화’
▲ 신지승 감독‧아내 이은경 감독’ 신장르개척 |
|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의 핵심개념으로 기억한다. 적정기술의 개념은 1960년대에 독일계 영국 경제학자 슈마허(Schumacher, 1911~1977)로부터 시작된다.
선진국과 제 3세계의 빈부 격차의 문제를 극복하는 목적으로 거대 자본의 대량생산을 기반을 두는 선진국과는 달리, 적은 비용으로 간단한 기술을 활용하여 작은 지역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소규모의 생산 활동을 지향하는 기술을 말한다.
슈마허는 적정기술의 전형적인 예로 영국의 대형 방직공장의 생산에 대항하며 물레를 돌리던 인도의 간디가 벌였던 운동을 꼽았다. 그리고 ‘작은 것은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슈마허가 1973년에 간행한 적정기술을 대표하는 저서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러한 적정기술의 사례를 작년에 한 영화제에서 발견했다. 작년 초가을에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국제영화제를 개최한다며 지인의 초대를 받게 되었다. 처음엔 “조그만 시골 농촌에서 국제영화제라니”라고 생각하며 의아했다.
▲ 2023년 국제마을영화제의 백미 ‘천백광’ 도예가문 집중조명 (사진제공 나영철박사 ) |
|
▲ 황해도 해주에서 도예로 대를 이어온 유씨가문은 전쟁 당시에 부산으로 피난을 와서도 둔치도에 자리를 잡고 가문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제공 나영철박사 ) |
|
국내에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전주, 제천, 부천, 강릉 등, 그리고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화제를 다녀봤지만 처음 접하는 영화제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골 농촌에서 평상시와 같이 농사일을 마치고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마을회관에 동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행사 주최자의 인사말과 함께 그날 상영할 영화와 외국에서 온 제작감독을 소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영화 감상에 들어간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부터 진풍경이 펼쳐진다. 구글번역기의 도움으로 감독과의 대화가 시작된다.
막 감상을 끝낸 영화의 제작감독이 근거리에서 제작 동기와 과정 그리고 취지와 에피소드 등의 설명을 직접 해주니, 여타의 영화제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름은 물론, 자유로운 소감과 말 잔치가 몹시도 의미롭다. 시골 농부들이 말하는 감상평과 질문의 날카로운 면들을 보며, 인터넷, 유튜브 등을 통한 지식, 정보화 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달라진 면면들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시간이 끝나고서 본격적인 잔치가 벌어진다. 마을에서 수확한 야채와 과일과 음식들로 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회관의 넓은 장소로 이동해서 시 낭송과 동참자들이 제각각의 장기자랑을 하며 외국인 감독들과 어울려서 춤도 추고 흥겨운 시간을 갖는다.
그 자리에서 노래와 춤 실력을 선보인 이탈리아에서 온 젊은 감독은 며칠 전 영화 상영을 먼저 했기에 다음날 일찍 출국 예정이다. 이별의 아쉬움에 유난히도 큰 그의 눈망울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며칠 동안 농부들의 밭일도 돕고 일상을 함께 보내며, 한국의 시골 정서와 마을 사람들의 정감에 깊이 빠졌음을 알게 한다. 참으로 보기 드물고 아름다웠던 시간의 경험으로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이 영화제의 이름은 ‘끄트머리 국제마을영화제’이며 그 중심에 신지승 감독이 있다. 신 감독은 지난 25년간 전국에 두메산골과 시골 농촌을 돌면서 작은 마을의 생태환경을 배경으로,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영화를 제작해왔다.
대규모 자본이 투여되고, 소수가 제작한 영화를 다수가 보는 기존의 영화제작과 관람 양식을 과감히 탈피하고, 마을공동체가 주어진 일상의 환경 속에서 친숙한 동네 사람들과 함께 영화라는 도구를 통해서 문화적 공감대를 고조시키는 효과를 얻는 것이 신 감독의 의도다.
그의 오랜 활동을 통해서 ‘마을영화’라는 새로운 장르가 개척되었고 이제는 ‘국제마을영화제’로까지 성장했다. 이러한 꾸준한 활동이 가능하기까지는 신 감독의 아내 이은경 감독의 내조가 중요했다.
신 감독 부부는 둘 다 영상, 영화제작 전문가이다. 신 감독은 기획과 연출을, 그리고 아내 이은경 감독은 주로 제작을 담당하는 것으로 안다. 그들의 마을영화 운동의 활동 15년 차에 일찍이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교보환경대상을 수상받기도 했다.
그동안에 신지승 감독이 추구해왔던 농촌공동체 중심의 영화 운동은 기존의 대규모 자본과 유명 연예인 그리고 대형 극장 중심적인 독점구조를 극복하고, 저예산으로 그 지역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소규모 제작과 상영 등의 지향성은 앞서 거론했던 슈마허 경제이론인 적정기술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와 지극히 부합된다.
슈마허가 물레 돌리기 운동을 펼쳤던 인도의 간디를 적정기술의 선구자로 꼽았듯이, 마을영화라는 장르를 개척한 신 감독에게 어쩌면 ‘영화계의 마하트마 간디’라는 별칭이 붙어도 무방할 것도 같다.
2023년 국제마을영화제는 지난 8월 20일부터 지역 마을 순회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인천-인제-양구-태백-양산-부산 등 한국을 종단하는 ‘끄트머리 국제 마을영화제’를 개최하며 프랑스, 호주, 일본, 파키스탄, 베트남 등 10개국 감독이 참석하는 끄트머리 국제마을 영화제는 각 지역을 순회하며 지역의 단체들과 영화감상 및 기후 위기를 토론할 예정이다.
작년 장수군 방문에 이어서 올해에도 필자에게 ‘끄트머리국제마을영화제’에서의 반가운 초청이다. 이번에 방문하는 마을은 그야말로 한반도 끄트머리에 위치한 부산의 섬 둔치도이며, 7일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이번 영화제는 그 주제어부터가 흥미롭다. 행사 첫 번째 날인 9월 1일은 ‘흙의 날’ 그리고 다음 날에는 ‘불의 날’, 사흘째는 ‘흙과 불의 날’로 마을의 기원제를 겸하기로 했다고 한다. 또한, 행사의 마지막 날에는 ‘흙 불 그리고 빛’이라는 주제로 축제를 열며 폐막식을 겸한다.
▲ 프랑스, 호주, 일본, 파키스탄, 베트남 등 10개국 감독이 참석하는 끄트머리 국제마을 영화제 |
|
필자에게는 이번 개최지인 둔치마을과 그 주제어만으로도 금방 유추되는 점이 떠올랐다. 그곳에는 3대째 흙과 불을 다스리는 대가들이 사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천백광’ 도예가문이 바로 그들이다.
황해도 해주에서 도예로 대를 이어온 유씨가문은 전쟁 당시에 부산으로 피난을 와서도 둔치도에 자리를 잡고 가문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유길수(66)와 그의 아내 김옥희(60) 도예가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그리고 두 아들 유승방(36)과 유승낙(32)이 대를 이어 도자기 가마에 불을 지피고 있다. 천백광 도예가는 요즈음 저렴하고 편리한 가스 불가마를 사용하지 않고 전통장작 가마를 고집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가마 속에 열을 최고치로 높이는 기술과도 관련 있을 뿐만 아니라, 불을 다스리는 대가들만이 느끼고 알 수 있는 묘법이 숨어있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도자기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흙과 불을 다스리는 기술로 다양한 연구개발에도 노력 중이다.
그중 한 성과로는, 일라이트와 같은 특수 광물질을 배합한 초벌 도자기와 신안 천일염을 결합해, 가마 속에서 소금의 불순물을 증발시키고 도자기에서는 미네랄을 비롯한 다양한 유익 물질을 흡수한 명품 소금 개발을 완성한 바도 있다.
이번 크트머리국제마을영화제의 신지승 감독과 천백광 가문의 유길수 도예가의 협업인 흙과 불 그리고 빛이라는 마을영화제가 어떤 양식의 새로운 감동을 빚어낼지가 대단히 기대된다. 작년처럼 소박하고 정겨운 작은 아름다움에 다시금 빠져볼 기회다.
원본 기사 보기:
모닝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