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연극평론가. 가톨릭관동대 사범대 명예교수(영문학), 前 현대영미어문학회 회장 |
|
● 나하고 맞는 사람일까요?
이제 중년이 된 여자 제자들이 가끔 인생 상담을 청해 오는 경우가 있다. 나는 원래 말이 직설적이어서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지나쳤다 싶을 때가 있었지만 그 역시 나이와 더불어 많이 완화된 면이 없지 않다.
아무튼 그들의 질문 가운데 가장 빈번한 것은 배우자에 관한 것이었다. “그 사람과 사는 게 옳은가 싶어요.” “나하고 맞는 사람일까요? 그러한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언제나 비슷했다. “나야 모르지. 같이 사는 사람이 알 거 아냐.”
사실 몇십 년의 결혼 생활이 지나고 아이들도 독립할 만큼 성장하면 많은 여성들은 지나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해 때론 깊은 회의감에 빠지고 만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원망의 대상은 자신의 배우자이기가 쉽다. 아주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남자의 경우도 그렇다. 사실 오랜 결혼 생활은 늘 배우자에 대한 묘한 반감과 더불어 ‘저 사람을 선택한 것이 맞았나?’ 하는 의심을 품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우리로 하여금 잊게 만드는 것이 있다. 사실 모든 관계에는 사이클이라는 것이 있다. 돌이켜 보라. 젊은 시절 사랑에 빠졌을 때, 상대의 전화를 기다리고, 스킨십을 원하고 상대의 괴팍함마저 좋아하지 않았던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것은 자연스럽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경험이다. 그저 가만히만 있어도 되는 일이다. 그렇게 빠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사랑에 빠진 이들은 종종 “완전히 마음을 뺏기고 말았어요.”라고 말한다.
수동적이다. 빼앗긴 거니까. 자긴 가만히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데 상대가 빼앗아 준 것이니까. 그런데 함께한 세월이 길어지다 보면 그 기억이 서서히 사라진다. 연구에 따르면 연애 시절 열정의 최대 유효기간은 아무리 길어야 3년을 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리곤 잊어버린다. 사랑의 감정은 사라져 버리고 세월의 기억만 남는다. 문제는 대부분의 결혼 남녀에게 있어 그 기억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결혼은 현실이니까. 미칠 듯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관계의 결말이다. 중세 서양의 표현이긴 하지만 그래서 ‘결혼은 사랑의 종말이다.’ 자주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성가시다. 스치는 손길이나 몸의 접촉도 유쾌하지가 않다. 가끔은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오 마이 갓’ 그래가지고야 어찌 사누… 배우자의 괴팍함은 이제 경멸의 대상이고 분노의 촉진제가 된다. 그 아름답고 낭만적이던 사랑의 감정은 무뎌지고 마침내 분노와 회한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런 감정의 끄트머리에서 나오는 질문이 ‘나한테 맞는 사람인가?’이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그때 그 누군가 다른 사람과 만났더라면, 그와 사랑에 빠지고 함께 세월을 함께 했다면… 이 순간부터 관계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 그때 그 누군가 다른 사람과 만났더라면, 그와 사랑에 빠지고 함께 세월을 함께 했다면… 이 순간부터 관계는 무너지기 시작한다.pixabay.com |
|
● 설렘은 사라지고 견디는 일만
즐거움과 설렘은 사라지고 참고 견디는 일만 남는다. 진실한 마음은 사라지고 빈껍데기 같은 공상만이 그 자리를 채운다. 간혹 참아왔던 일탈을 꿈꾸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을 부정한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함께 살아온 세월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는 것을. ‘못생기고 들창코에다 하루 종일 망상(妄想)만을 쫓다가 거지꼴로 거리를 쏘다니며 젊은이들의 교화를 위해 강의를 한다나? 게다가 동성애자란다.’ 소크라테스 얘기다. 그의 아내는 악처로 이름난 크산티페. 그들은 왜 함께 살았을까? 마지막 독배를 마시는 순간까지 자신을 무시한 괴팍한 남편이건만 그녀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는 남편의 제자들을 질투하고 재산 문제로 자살 소동을 벌이기도 한다. 그녀와의 불화 끝에 말년의 톨스토이는 집을 나가 떠돌다가 어느 기차역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는다. 대문호의 애석한 종말이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사십 년이 훨씬 넘는 세월 속에서 남편의 악필을 읽을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고 ‘전쟁과 평화’의 방대한 원고를 여섯 번이나 손으로 옮겨 쓴 사람이었다. ‘결혼을 하면 사랑은 끝이 난다. 따라서 사랑은 결혼 밖에 있다. 하지만 때로 밖에 있는 그 무언가가 안에 있는 것의 존재 이유가 되기도 한다.’
20세기 대표적인 서양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말이다. 사랑했었다는 막연한 기억, 그리고 그 사랑이 아직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막연한 기대, 그것이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힘일까? 오직 세월과 기억이? 데리다의 표현처럼 ‘불가능의 가능’이 우리네 결혼 생활이란 말인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 사람이 나한테 맞는 사람일까?’라는 질문은 오류일 뿐이다. 내게 맞는 사람을 찾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한 마디로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이다.’ 어차피 관계의 사이클은 시작될 것이고 우린 마찬가지의 질문에 이르게 될 테니까.
진부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이미 찾아진 그를, 그녀를 여전히 사랑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사람을 찾지 말고, 방법을 찾으라는 얘기다. 어려운 일이라고? 당연하다. 사랑 호르몬이 떨어진 관계를 유지하려면 밤이고 낮이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시간과 힘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혜’가 필요하다. 나의 느낌과 상대의 느낌이 같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중력의 법칙처럼 관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사랑은 신비가 아니다. 결혼은 더욱 그렇다. 사랑은 감정만이 아니다. 결혼은 더더욱 그렇다. 사랑은 결정인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당신이 결정한다. 사람을 보낸 것은 신(神)이었지만 그를 머물게 한 것은 당신이었다. 당신이 만든 관계를 책임지라.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돌아서라.
원본 기사 보기:
모닝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