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계부채 급증 ‘조만간 1100조’
지난 10월 1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9월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은행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총액은 1079조8,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특히 5월(4.2조원)부터 6월(5.8조원), 7월(5.9조원), 8월(6.9조원)까지 5개월 연속으로 확대된 이후, 이번에는 증가 폭이 약간 축소됐다고는 하지만 추석 연휴에 기인한 탓이다.
최근 고금리 상황 속에도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특례보금자리론 등의 수요가 반영되며 지난 4월부터 은행 가계대출은 6개월 연속 증가한 것이다.
‘50년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고금리 시대 원리금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상품으로, 애초 당국은 금융권의 상품 출시를 독려했었다. 이에 맞춰 은행, 보험사들도 올해 50년 주담대 판매를 시작했지만 최근 부동산시장 회복세에 힘입어 가계대출이 급증하면서 빚 증가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와 함께 ‘특례보금자리론’은 주택금융공사가 내놓은 고정금리, 장기분할상환 대출로 시중은행보다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고 만기는 길다는 장점을 내세워 7개월 동안 35조 원 넘게 공급됐다.
이처럼, 금융권 가계부채 규모가 1000조원을 상회한 가운데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가계대출 연체율이 급상승하고 있어 한국경제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특히 소폭 반등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집값 하락세가 수년째 지속되면서 과도한 주택대출을 받은 ‘하우스 푸어’들이 결국 원리금 상환 능력에 압박을 받게 되면서 가계의 부채의 뇌관이 되고 있다. 또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를 받지 않은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 더 큰 문제로서 금융 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가계부채가 사상 최고치까지 경신하면서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우리나라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64%에 달해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초기(130%) 때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 가계부채 심각성 ‘질적으로 악화’
‘가계 부채’(가계 신용)란 개인들이 ‘은행‧보험‧저축은행‧카드사’ 등 금융권에서 받은 가계 대출과 카드‧할부거래 등으로 물건을 구입한 판매신용을 합한 것으로 개인들이 금융권에 갚아야 할 전체 빚을 의미한다.
가계 부채가 증가하면 어떤 문제점이 나타날까? 먼저, 가계 부채가 심각한 상황에서 금리인상과 같은 변동은 가계 부채의 안정적 관리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가처분 소득’보다 가계 신용액이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고금리는 가계 운용에 큰 충격이다.
이와 함께 가계 부채 증가에 따른 가계의 금융부담 확대는 장기적으로 소비를 위축시키게 된다. 가처분 소득대비 가계 부채가 지속 증가하고, 가계의 이자부담이 가중되면 가계의 소비심리 위축은 필연적이다.
이와 함께 금융 전문가들은 현재의 가계부채 증가흐름과 관련해 양적 측면뿐 아니라 질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금융기관 대출자, 신용카드 사용자, 할부금융 이용자 등 모든 부문에서 신용불량자가 늘고 있어 신용대란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원리금 상환 능력이 약화되고 있는 가운데, 은행권보다 비은행 금융회사의 부채가 더 많이 늘어나고 있어 실물경제를 위협할 수준까지 육박하고 있다. 유독 취약층 이용 비율이 높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대출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이들 금융회사의 연체율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저축은행업권 연체율은 5.33%로 지난해 말(3.41%) 대비 1.92%p나 급등했다. 같은 기간 새마을금고 연체율은 3.59%에서 5.41%, 상호금융권은 1.52%에서 2.80%, 카드사는 1.20%에서 1.58%로 각각 상승했다.
● 가처분 소득 증대 ‘가계부채 줄어’
많은 경제학자들은 최근 가계부채의 그 증가 속도가 무척 빠르기에 앞으로 가계 부채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데 입을 모으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가 소득에 비해 과도한 수준에 도달한 데다 경기 부진의 장기화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꽁꽁 닫고 있다는 얘기다.
가장 현실적인 방책은 가계 부채보다 가계 소득을 늘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계소득의 증가는 국내외적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매우 쉽지 않다.
가계의 소득 증가가 부진한 이유는 기업의 영업 이익은 늘었으나 그것이 투자로 이어지지 않아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기업의 투자는 가계의 소득으로 이어져 가계는 그 소득을 바탕으로 소비 지출과 함께 저축을 한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제 더 이상 국내 투자에 매우 미온적이다 보니 고용도 늘지 않고, 고용의 질도 나빠지는 등 기업과 가계 간의 선순환 고리가 작동하지 않아 가계 소득이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가계부채를 줄이려면 경기가 살아나 가계소득이 늘어나든지, 부동산 시장이 정상화돼야 한다. 국민의 소득을 늘리고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첩경은 민간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직원을 다수 고용하는 것이 정답이다.
일자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제조업만이 아니라 여행, 음식, 숙박, 전시, 공연, 항공 등 서비스산업 모두 전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부가가치 비중으로 볼 때 제조업은 약 30%를 점유하지만 서비스업은 약 60%로 두 배이고, 종업원 수로 볼 때는 제조업에는 약 400만 명이 종사하지만, 서비스업에는 약 1600만으로 제조업 종사자의 4배이다.
이에 정부도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펴서 많은 기업들이 활발하게 기업 경영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 여기에서 기업 친화적 의미는 단순히 법인 세율을 낮추는 임시 방편책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래 인재 양성에 대한 투자 확대와 규제완화 등을 통해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아울러 빈곤 그룹과 시니어 계층의 가처분 소득을 늘리는 방안을 효율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시장소득의 상대적 빈곤율은 21%다. 중위소득 50% 이하 빈곤선 이하 가구 비율이 21%라는 얘기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2019년 가처분소득 빈곤율은 16%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감소폭이 더욱 크다. 시장소득 빈곤율 37%였던 프랑스는 가처분소득 빈곤율이 8%로 뚝 떨어졌고, 핀란드(34%→6%), 독일(32%→11%), 영국(28%→12%)도 그랬다. 많은 나라들이 재정정책을 통해 시장에서 발생한 불평등을 효과적으로 완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지난 10월 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인일자리지원법’에 정부는 총력 지원해야 한다. 이 법안은 “보건복지부장관은 5년마다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노인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을 전문적‧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설립 등을 포함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한동안 지속해 온 고금리 정책의 효과를 면밀히 점검하면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고 경제의 체질 개선에 노력해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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