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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국가경영 입김' 선명한 흔적

MBC 보도 안기부 불법도청 녹취록 '기아차 해법' 언급 의미뭘까

기사입력시간 : 2005/07/25 [14:18:00]

소정현기자

 
◇ 가아사태는 정부-재벌-기형 언론의 합작품
 
MBC가 보도한 안기부 불법도청 녹취록이 일파만파 걷잡을수 없이 격렬한 회오리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모 자동차 그룹의 고사를 암시하는 대목 또한 재벌의 윤리성 논쟁을 거세게 촉발시키고 있어 그 비정함을 더하게 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1997년 기아자동차 인수를 둘러싸고 한국의 대표적 재벌기업이 용의주도한 작전을 전개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 있어 세간의 눈길을 떨어지지 않게 한다. 

관련 녹취록 요지로서 일간지 고위인사가 기아자동차를 모 대기업이 인수해야 한다는 '여론' 조성 후  정치권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대기업 고위인사에게 제시한 것이다. 이와 관련, 집권당 실세가 " 인수 복안을 공론화시켜주면 당내 정책위에서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는 말을 대기업 고위인사에게 전했다는 것.
 
1997년 IMF사태 발발의 결정적 기폭제가 된 것이 '기아사태'였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1997년 7월 15일 발발한 기아사태는 가뜩이나 위태롭던 한국경제에 치명타를 가하며 외국인 자금 이탈을 속속 초래하여 한국은 결국 IMF에 긴급구제금융을 신청하며 비참한 '경제 식민지'라는 가시밭길에 접어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기아사태 발발 직전 기아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삼성의 공작으로 기아가 위기에 봉착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캐피탈 등 삼성의 금융계열사들이 빌려주었던 4,000억원을 예고도 없이 급작스레 회수하는 바람에 재정난에 봉착해 파산위기에 몰렸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기아 관계자들의 주장은 심증만 있었을뿐 뚜렷한 근거가 없어 '음모론적 의혹' 차원에 머물렀으나, 금번 '이상호 X파일'을 통해 기아차 인수를 위한 삼성 막후공작의 실체의 전모가 공개된 것이리라. 언론을 통해 "삼성이 기아차를 인수해야 한다"는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고, 집권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대신 기아차 인수 지원사격을 얻어내려 한 정부-재벌-언론의 삼각 공생 관계의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삼성이 제2금융권을 통해 기아의 자금 경색을 유도하고 정부를 압박해 기아 경영진을 퇴진시킨 뒤 기아차를 인수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실제로 자금 회수가 이뤄지고 김 전 회장에 대한 퇴진 압박이 진행되면서 설득력 있게 나돌았다.
 
김선홍 기아자동차 전 회장은 99년 1월 국회에서 열린 ‘외환위기’ 특위에서 "삼성이 금융계열사 등을 통해 빌려줬던 5000억원대의 자금을 거둬들였고, 결국 기아가 파산에 봉착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당시 국민회의의 김영환 의원은 "97년을 기아 인수의 적기로 판단한 삼성은 포드와 합작해 기아를 인수하려는 치밀한 전략을 세웠다"고 주장한바 있다. 
 
 
◇ 기아사태 '투명한 본질'은 무엇인가
 
기아그룹은 기아자동차를 모기업으로 총 26개 계열사에 5만 5천명의 임직원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96년말 기준으로 자산총액 14조5천여억원으로 재계8위, 매출액은 12조1천4백여억원으로 재계 7위의 대기업이었다.
 
가아사태의 일대 파장은 한보사태의 충격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대기업도 망할수 있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확산됨과 동시에 계속 이어진 부도와 실직에 대한 공포, 그리고 바로 그것이 극명하게 현실화한 IMF 구제금융 시대의 대표적 단상이었다.

현재 현대는 기아인수후 매머드 자동차 회사로서  안정된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기아의 수습과정을 돌아보면 그것의 당위성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과연 3자 매각이 올바른 해결방안이었는가? 자력 회생할 여지는 없었는가? 또는 기아의 3자 매각이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는가? 에 관한 문제를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10조원이 넘는 부채액수를 감안해 보았을 때 자력회생이 불가능한 것임은 부인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런 흐름들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관측자들은 다음 의견을 강력 개진하는데 별반 이견을 표출시키지 않고 있다.

기아의 자력회생 가능성과는 별도로 치더라도 부도유예협약대상기업 선정 이후부터, 어쩌면 그 이전부터 외부세력이 기아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기아측의 자구책을 완전 무시하는 기아 채권단의 태도나 많은 협력업체들이 도산하고 있는데도 알아서 하라는 식의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는 의도적으로 채권단과 정부, 그리고 제3의 세력이 기아를 궁지로 몰아가고 있었으며 애초부터 기아의 자력회생에는 관심조차 없었다는 의혹을 갖게한다는 것이다.  이에 그 실상의 신빙성을  소급하여  반추하지 않을수 없게 한다.

1997년 7월 15일 재계서열 8위인 기아그룹이 자금난에 시달려온 끝에 부도유예협약대상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진로, 대농에 이어 3번째로 선정된 것이다. 일반 국민들이 기아의 심각성을 감지한것은 이때부터이지만 그 이전부터 금융계에는 기아 위기설이 돌고 있었다.
 
기아에 노란불이 켜진 것은 한보사태 이후로 가속화 되었으며 본격적으로 빨간불이 켜진 것은 6월 16일 종금사의 어음을 제때 막지 못해 아시아자동차가 위기에 몰리면서부터였다.
 
재계 8위인 기아그룹이 부도날 경우 12조의 빚에 2만개가 넘는 계열 하청기업 등의 도산에 따른 충격을 가늠했을 때 '기아의 부도는 안된다' 는 원칙은 이미 정부나 은행권에서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이에 대한 조치로 재경원은 종금사들에 자금회수를 자제하도록 통보하고 자금회수가 다소 완화되자 기아는 자구노력을 통해 안간힘을 썼지만 협조융자에 대한 다른 은행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고 종금사들의 자금회수도 재개되었다.
 
기아지원의 부담을 혼자 떠안아온 제일은행은 기아와 함께 쓰러지는 상황마저 걱정해야 하게 됐다. 이 판국에서 제일은행으로서는 '같이 죽는 길목' 에서 '서로 사는 길' 로 부도유예 협약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기아그룹은 채권금융기관에 법정관리보다는 화의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공식 통보한다. 이에 대해 채권단은 기아자동차가 회생하는 길은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정관리 뿐이라면서 법정관리신청을 거듭 촉구한다.
 
법원이 화의개시결정을 내려주려면 총채권의 4분의 3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제일·산업·회환 3개 은행이 법원에 기아의 화의동의를 거부한다는 입장을 통보함으로써 기아의 화의동의는 사실상 물건너갔다. 이에 종합금융사들도 당초의 입장을 바꿔 기아의 화의요청에 동의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린다.
 
결국 3개월 이상을 끌어온 기아사태는 97년 10월 22일 정부의  '법정관리' 발표로 결론 났다. 애초에 정부는 명분과 실리를 위해 '먼저 김선홍회장이 퇴진하고 나중에 화의를 수용'한다는 입장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화의수용시 사태의 장기화, 시장자율의 실패, 경제상황 등을 이유로 정부기본 원칙의 번복, 공기업 민영화에 역행한다는 비난을 싸면서까지 법정관리쪽으로 최종 발표함으로써 몇 달동안 끌어오던 기아사태는 그룹해체로 결론이 났다.

정부는 산업은행이 대출금을 출자로 전환하는 것을 통해 기아자동차를 공기업화하고 기아자동차가 정상화되면 새정부에서 공기업 처리에 대한 일반적 정책방향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는 신속히 정상화 후 제3자 매각하겠다는 뜻이다. 결국 기아사태는 지역감정, 관료조직의 병폐, 노사문제, 정치권 위기관리 능력 부재등 한국병이 뒤섞인채 1년 5개월을 표류하다가 98년 10월 19일 기아자동차의 현대낙찰로 그 수습이 일단락 되었다. 
 
 
◇ 정부는 누구를 옹호했나

기아그룹의 자금난은 경기침체에 따른 자동차 판매부진으로부터 시작된다. 기아그룹은 자동차 전문기업 집단으로 자동차 분야가 어려우면 그룹전체가 어려워지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여기다 계열기업들의 방만한 경영이 그룹 전체의 자금사정을 어렵게 만들었다.
 
여기에 부도방지협약과 삼성자동차 보고서 파문 등은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제2금융기관들이 원리금상환이 동결되는 부도방지협약이 지정되기 전에 무차별적 자금회수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 당시만 해도 기아그룹은 현재의 자금위기만 넘기면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 전망이었다.
 
당시 강경식 재정경제원 장관 겸 경제부총리는 기아사태 해법에서 애매한 처신으로 맹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기아를 인수할 뜻도 능력도 없 다던 삼성그룹이 97년 3월 기아자동차의 인수를 위한 계획을 면밀하게 검토했으며, 이를 위해 '정부와의 공조필요성'을 제기한 내용의 내부보고서가 폭로되면서 비난의 화살이 강 부총리를 향해 집중 되었던 것이다.

사실 강 부총리 취임초만 하더라도 경제팀의 개혁정책에 대해 국민들은 우려 속에 그래도 비교적 폭넓은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기아사태 이후 현 경제 팀의 실기는 계속됐다. 기아에 대한 지원과 함께 서둘러 금융위기를 수습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은 데도 정부는 '시장경제원리'만을 며 뒷짐을 지고 있다가 결국 경제전반으로 위기가 확대된 것이다.

게다가 때마침 공개된 삼성의 보고서는 당시 걍제팀을 일대 코너로 몰아붙였다. 국민들은 "기아 인수를 위해 정부와의 공조를 더 공고히 할 계 획"이라는 내용이 담긴 삼성그룹 보고서를 놓고 경제팀과 삼성과의 유착의혹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지난 94년 부산신호공단 유치위원 장으로 삼성의 자동차사업 진출을 적극 추진했던 강 부총리의 삼성 비호 의혹은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기아그룹 부장급 이하 일반관리직 사원들의 모임인 종업원 비상재건대책 위원회는 당시 '삼성의 보고서 파문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발표해  "그동안 소문으로 나돌았던 삼성과 정부 경제팀과의 커넥션의 일부가 드러 났다는 점에서 기아인과 국민들은 분노와 배신감을 느낀다"며 삼성의 공개 사과와 함께 강 부총리의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전국자동차산업노동조 합연맹도 "기아사태가 정부와 삼성간의 치밀한 각본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이 입증됐다"며 "공공연한 삼성맨으로 기아인수를 주도하 고 있는 강 부총리는 즉각퇴진해야 한다"며 가세했다.
 
 
◇ 모 재벌의 내부문건 파문

기아사태의 배후에는 독점자본 간의 항쟁과 암투 그리고 음모가 있다. '기아그룹 사태 정상화를 위한 민주노총의 입장'이라는 제하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보도자료(97.7.20)도 "기아 사태가 이처럼 촉발된 배후에는 모재벌이 작용했다는 음모설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고 지적하고, 또 '삼성재벌'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기아사태는 기아자동차를 한계기업으로 규정하면서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거론한 삼성의 이해, 대선을 둘러싼 각 당의 이해, 자동차 개별자본의 이해, 채권단과 정부의 입장이 뒤얽혀 난맥상을 보여 왔고, 97년 8월 22일 삼성의 '신수종(新樹種-신성장동력과 유산한 개념으로 미래 신산업) 보고서'가 공개 보도되면서 복잡함을 가중시키게 된다.

기존 업체가 격렬하게 반발한 것은 당연했다. 삼성은 당시 "실무자 선에서 작성된 보고서로 이미 폐기됐다"고 주장했지만 기아그룹 및 협력업체 직원들은 '삼성의 '흑심'이 확인됐다"면서 삼성을 맹렬히 비난했다.
 
이에 앞서 동년 6월 삼성자동차의 '국내 자동차산업 구조개편 필요성과 정부의 지원방안 보고서'가 공개되어 기존 완성차 업체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삼성은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기 전에도 여러 번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려는 시도로 물의를 빚었었다.
 
'가설'로만 떠돌던 이런 의혹들이  삼성의 '신수종(新樹種)사업 추진현황 및 향후계획 보고서'(신수종 보고서) 파문을 계기로 구체적으로 제기된 것이다. 삼성이 완강히 부인하던 기아인수 의지를 담은 내부 문건이 공개됨으로써 삼성이 기아사태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는지의 여부가 도마에 오른 것이다. 이제껏 기아인수에 대한 삼성의 공식입장은  "인수할 여력도 마음도 없다는 것"이었다.

97년 6월 삼성자동차의 '국내 자동차산업의 구조재편 필요성과 정부의 지원방안 보고서'(구조재편 보고서)가 공개됐을 때도 삼성은 당시 과장급 연구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비난 여론을 피해나갔다. 그룹 비서실이 작성한 '신수종 보고서'는 이런 기존 입장을 뿌리채 뒤흔든 것이다. 그러나 신수종 보고서의 가치는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아인수 시나리오의 밑그림을 그리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는 것이 다. '신수종 보고서'의 작성 시점은 97년 3월 4일. 동년 4월 작성된 '구조재편 보고서'보다 한달 가량 빠르다. 의도하지 않았던 공개는 신수종 보고서가 구조개편 보고서보다 2개월 이상 늦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기아인수와 관련한 '신수종 보고서'가 추상적 언급에만 그친 반면 '구조재편 보고서'는 상당히 진척된 내용을 담았다는 점. '신수종 보고서'는 "기아자동차는 회생은 물론 독자적인 경영이 힘들다. 따라서 그룹 자동차 사업의 조기 경쟁력확보를 위해 전략적 인수를 추진하고… 기아자동차 인수 분위기 및 여론을 점차 조성한다"는 일반론을 담고 있다.

반면, '구조재편 보고서'는 "자동차업종 구조조정은 민간 주도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인수합병시장이 초기 단계이므로 정부의 간접적 지원이 필요하다. 세제지원, 각종 규제완화 등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요구된다"는 보다 구체적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한달새 기아인수 계획이 어느 정도 구체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여기서 주목되었던 것은 이미 '신수종 보고서'에서 "기아인수를 위해 정부와의 공고한 공조체제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힌 점. 초기부터 정부를 등에 업고 기아인수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명백히 한 것이다. 여기에는 삼성자동차 부산유치에 앞장섰던 강경식재경원부총 리가 경제팀을 이끌고 있는 등 정부내 분위기가 삼성에 우호적이란 계산도 깔렸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구조재편 보고서는 "국내외 시장에서의 자동차의 전반적인 공급과잉과 그에 따른 경쟁의 격화, 그리고 이른바 리스트럭처링(구조조정)의 불가피성을 지적한 후 노골적으로 기아자동차는 '성장의 한계에 직면'했다고 쓰고 있다.
 
상술하면,  "현대와 대우자동차를 제외하고는 (기아, 아시아, 쌍룡 등 여타의 업체는) 2000년대에는 성장역량이 소진"되고 '기아자동차' 경우는 상대적으로 낮은 부채비율, 증가추세의 이익률 등 외견상 국내 타 자동차업체에 비해 건실한 경영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자산규모에 비해 차입금이 과다하여(96년 6월말 기준 자산은 현대자동차의 78% 수준, 차입금은 현대자동차의 108%) 상당한 금융비용의 부담을 안고 있고 자동차 중심의 그룹구조로 인한 그룹 지원력 미약, 최고 경영진들에 대한 불신, 경영진 간의 갈등 상존 등으로 장기적인 발전가능성은 기대하기 힘든 상태로서 성장의 한계에 직면"했다고 적시하고 있다. 
 
다름 아닌, 사실상 한국의 최고 재벌인 삼성의 '판단'이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재정상의 문제를 안고 있는 기아그룹을 흔들고 목조이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삼성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솔종합금융'은 기아그룹에 대한 "대출금을 회수하고" 있었고, '삼성생명'은 기아그룹의 사실상의 지주회사인 "기산의 주식을 투매"했다. 기아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인 '제2금융권'의 자금회수를 선도하고, 주식시장에서의 기아그룹 주가의 폭락을 유도하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아문제 처리에 있어서 정부의 일관되지 못한 태도 또한 큰 책임에서 면책될 수 없다 하겠다. 모호한 태도에서 불필요한 개입으로, 개입이 꼭 필요한 순간에는 또다시 방관의 자세를 보임으로써 기아문제를 골병들게 하는데 단단히 한몫 거든 것이리라.
 
기아사태 초기에 기아그룹과 채권단간의 감정대립으로 기아 협력업체들이 어음할인을 받지 못해 도산해 가고 있을 때 정부는 기업과 금융기관이 해결 할 일 이라며 방관만 하다가 늦장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금융시장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결할 의지가 없이, 작동하지 않는 시장경제의 원리만 찾아 사태를 악화시켰다. 기아사태는 경영의 실패와 정책대응의 무원칙, 정부당국자의 아집(我執) 못지 않게 재벌의 전횡이 국민경제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뼈아픈 수치요 오욕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