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거세는 신라 초대 왕이며 우리나라 모든 박씨의 시조다. 왕호(王號)는 거서간(居西干)이며 비(妃)는 알영부인(閼英夫人)이다. 박혁거세의 출생에 관해서는 삼국사기에 자세히 나와 있다. 신라가 생기기 전에 여섯 개의 마을에 6부 촌장이 있었다.
1. 이(李)씨의 조상인 알천 양산촌(閼川 楊山村)의 알평(謁平), 2. 최(崔)씨의 조상인 돌산 고허촌(突山 高墟村)의 소벌도리(蘇伐都利)(삼국유사에는 정씨의 조상으로 되어있으며 진주소(蘇)씨도 소벌도리를 시조로 하고 있다), 3. 손(孫)씨의 조상인 무산 대수촌(茂山 大樹村)의 구례마(俱禮馬), 4. 정(鄭)씨의 조상인 취산 진지촌(취산 珍支村)의 지백호(智伯虎)(삼국유사에는 최씨의 조상으로 되어있다), 5. 배(裵)씨의 조상인 금산 가리촌(金山 加利村)의 지타(只他), 6. 설(薛)씨의 조상인 명활산 고야촌(明活山 高耶村)의 호진(虎珍) 등이 바로 이들이다.
기원전 69년 이들 여섯 촌장들이 아들을 데리고 알천의 언덕위에 모여서 백성을 다스릴 임금을 추대할 것을 의논하고 있었다. 이때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아래에 있는 나정(蘿井)이라는 우물가에 오색영롱한 빛이 비치고 흰 말 한 마리가 땅에 꿇어앉아 절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곳에 가서 보았더니 박같이 생긴 알이 있어서 알을 깨어보니 그곳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아이를 혁연히 세상에 나왔다고 해서 혁거세(赫居世)라고 하고 박에서 나왔다며 성을 박이라고 해서 박씨의 시조가 되었다.
같은 날 사량리에 있는 알영정이라는 우물에 용이 나타났는데 왼쪽갈비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나왔다. 얼굴과 입술이 고왔으나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아서 월성 북쪽에 있는 냇물에 목욕을 시켰더니 부리가 떨어졌다. 사람들이 이 아이가 나온 우물 이름을 따서 이름을 알영(閼英)이라고 했다.
기원전 57년 이 두 아이가 13세가 되자 박혁거세는 왕이 되고 알영을 왕비로 삼았으며 나라 이름을 서라벌(신라)이라고 했다. 이때부터 신라 왕실의 56왕은 박(朴), 석(昔), 김(金)의 3성에 의하여 교체 반복되었다. 그 중에서 박씨 왕은 시조왕 박혁거세를 비롯하여 모두 10명이다.
박씨는 여러 본관 중 단 1본도 외래 귀화족이 없다. 모든 박씨는 신라의 시조왕 박혁거세를 유일한 시조로 받들고 있다.
박씨의 세계는 박혁거세의 증손인 파사왕(신라 5대)과 일성왕(신라 7대)에서 갈라진다. 파사왕계는 뒤에 영해, 면천, 강릉 등으로 분관했다. 비안, 우봉(牛峰), 이산(尼山), 해주(海州) 등도 파사왕의 후손이다.
일성왕계는 박혁거세의 25대손인 경명왕(신라 54대)과 경애왕(신라 55대) 대에서 다시 갈라진다. 경명왕계는 아들 9형제에서 9개 파로 나누어진다.
- 첫째 아들 박언침의 밀성대군파(密城大君派): 밀양, 반남, 진원박씨 등/ - 둘째 아들 박언성의 고양대군파(高陽大君派): 고령박씨/
- 셋째 아들 박언신의 속함대군파(速咸大君派): 함양, 삼척박씨 등/
- 넷째 아들 박언립의 죽성대군파(竹城大君派): 죽산, 음성, 고성박씨/
- 다섯째 아들 박언창의 사벌대군파(沙伐大君派): 상주, 충주박씨/
- 여섯째 아들 박언화의 완산대군파(完山大君派): 전주, 무안박씨/
- 일곱째 아들 박언지의 강남대군파(江南大君派): 순천, 춘천박씨 등/
- 여덟째 아들 박언의의 월성대군파(月城大君派): 경주박씨의 8대군파/
- 아홉째 아들 박교순(朴交舜)의 국상공파(國相公派): 울산박씨로 분파/
한편 경애왕계는 계림대군파(鷄林大君派)를 이루었다.
박씨는 밀성대군파가 주류를 이룬다. 박씨 인구의 70∼80%가 밀양박씨이다. 밀양박씨의 시조는 신라 54대 경명왕의 아홉 아들 중 첫째인 밀성대군 박언침이다. 밀성은 밀양의 옛 이름이다.
밀양박씨는 규정공파를 비롯 문하시중공파, 도평의사공파, 좌복야공파, 밀직부사공파, 판도공파, 좌윤공파, 사문진사공파, 충헌공파, 영동정공파, 밀직부원군파, 정국공파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규정공파(糾正公派)가 가장 번성했다. 특히 박언침의 8세손 박언부의 후손과 박언인의 후손이 가문을 크게 빛냈다. 규정공파의 파조 박현(朴鉉)은 박언침의 9세손이다.
박현은 고려 때 사헌부 규정을 지냈으며, 옥천의 원덕사에 제향되었다. 수교충절록에서는 "고려 태사대사공신 청백리 규정공 박현은 문성공 안유, 문헌공 최충 등과 한 몸이다“라고 그를 극찬하고 있다.
규정공파는 조선조에서 모두 261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으며, 우리나라 모든 박씨 가운데 가장 번창한 문중이다. 박씨 인구의 절반 이상이 규정공의 후손이며 31개 소파가 있다.
규정공의 후손으로 고려 말 조선 초 인물은 박강생, 박심문 부자가 있다. 박강생은 고려 말 문과에 급제, 조선조 세종 때 집현전 부제학 등을 역임한 당대의 문장가였다. 그의 아들 박심문은 단종 초에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모의하다가 사전에 탄로 나자 음독자결로 충절을 지켰다.
전남 장흥군 장흥면 사안리 연화봉 남쪽 기슭의 세덕사(世德祠)는 밀양박씨 규정공파의 문중사우이다. 이 사우는 원래 전라북도 임실 유림들이 규정공 박현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1865년(고종2) 임실 중주원(中州院)에 창건했다. 그러나 창건된 후 3년 만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지고 후에 이곳에 다시 세워졌다. 규정공 박현을 비롯한 10위(位)의 위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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