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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2.11.30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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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비극, 나사로의 축복! 실물교훈
혈육 전도의 중요성 그리고 교회(44-8)
 
알파 오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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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와 나사로는 이생에서 서로 대면할 수 있는 한 곳에서 살았지만 죽음 이후에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분리되었다.   
 
 
 

부자의 비극, 나사로의 축복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극을 통해 혈육 전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로 한다.

누가복음 16장은 예수님께서 친히 죽음 이후의 부자와 나사로가 있는 곳을 소상하게 예시하고 있다. 이 기록은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가 결코 아니라 실제 사실이다.

부자와 나사로는 이생에서 서로 대면할 수 있는 한 곳에서 살았지만 죽음 이후에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분리되었다.

이 부자가 지옥에 간 것은 부자라는 데에 원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사로가 가난하다 해서 천국에 간 것은 더더욱 아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최후의 심판에서는 공정하게 평가된다.
 
▲ 부자는 살아있을 때 자신의 영적인 문제를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부자는 이 세상에서 날마다 잔치를 베풀 정도로 호화롭게 살았다. 오로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것들에 심취하며 살았다. 물론 육신의 호사스런 생활 그 자체만을 따지자면 지옥에 오게 할 명분으로는 부적당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부자가 왜 지옥에 왔을까? 분명 그가 살인하거나 간음하거나 도적질을 하지 아니했다 하더라도 그 좋으신 하나님을 거역하며 산 것은 엄연한 죄였다. 부자는 살아있을 때 자신의 영적인 문제를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반면 나사로는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는 자였다. 결국 이 세상에서의 삶이, 두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한 것이다.

부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소비한 후에 새로운 세상이 자신을 맞이한 것을 알게 된다. 부자를 맞이한 세상은 불과 유황이 타는 지옥이었다. 부자는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었던 모든 의식과 모든 기억과 모든 고통을 그곳에서도 동일하게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지옥에서 부자가 간청하는 몇 가지를 통해 그 처절한 고통을 감지할 수 있다. 부자는 지옥에서 제일 먼저 뜨거운 불의 고통과 목마름을 호소했다. 그는 자신이 처한 곳이 구체적으로 눈으로 볼 수 있는 ‘이 불꽃 가운데’(24절)라고 이야기 한다.

이에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천국과 지옥은 아예 서로 왕래할 수 없는 곳이다”(26절)라고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설명한다.

부자는 또 아직 살아있는 자신의 형제들을 생각했다. 부자는 살아있는 그들만이라도 지옥에 오지 않게 하기 위해 죽은 나사로를 그들에게 보내달라고 간청한다.

어쩌면 지옥 불 못에 있는 우리의 불신 혈육들도 죽은 이후 부자와 똑같은 심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부자의 생각에는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그들에게 가면 즉, 그들이 분명 나사로의 말을 믿고 회개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부자는 개인적 고통에 앞서 강력하면서도 집요하게 이 문제를 간청했다.

이에 아브라함의 대답은 단호하기만 했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찌니라”(29절)

지옥에서의 부자의 호소는 한마디도 용인되지 않았다. 부자는 지옥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아브라함은 부자의 형제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여전히 그들 가까이 있음을 상기시켰다.

다섯 형제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기회의 소중함을 전혀 생각지 않고 있다. 성경은 그 기회가 순식간이 없어질지 모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 거지 나사로의 죽음은 기쁜 일이요 즐거운 일이요 영광스러운 일이요 큰 축복이 되었다. 고통에서의 해방, 절망에서의 해방, 가난에서의 해방, 그리고 비인격적인 대우에서의 해방이었다.       
 

거지 나사로의 죽음은 기쁜 일이요 즐거운 일이요 영광스러운 일이요 큰 축복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 죽음은 나사로에게는 해방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통에서의 해방, 절망에서의 해방, 가난에서의 해방, 그리고 비인격적인 대우에서의 해방이었다.

그러나 부자의 죽음은 고통이요, 공포요, 불안이요, 저주였다. 부자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법석대었지만 거지의 장례식에는 누구하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장례식과 쓸쓸하게 치러진 거지의 시체의 사건이 일어난 역사의 무대 배후에는 죽음을 앞둔 참된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 구원은 가깝고도 멀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옥이 실제로 없다고 생각하거나, 지옥을 관념적으로만 간주하기에 결코 가서는 안 되는 곳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간다면 자신도 갈 만하다고 여기고 있다.

물론 구원받고 천국 가는 것은 일단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전제된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압축된다.

하지만 여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 진실되게 교회 다니는 것은 교회 봉사와 여러 가지 선행을 가지고 증거로 삼는다. 때문에 신자들도 천국은 열심히 교회 다니고 선행을 많이 한 사람이 가는 곳으로 여겨버린다.

그렇다고 신자들이 천국과 지옥을 마음에 두고 사는 것도 아니다. 자신은 이미 교회에 다니고 열심히 믿고 있는데 이미 천국을 확보한 사람으로서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더더욱 신자에게는 지옥 간다는 소리가 크나큰 욕으로 들리게 될 것이다.

▲ 기독교계에서 지옥의 참혹한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추상적 지옥에 치우쳐 있기에 복음을 통해 구원받아야만 하고 또 그 복음을 증거해야만 하는 성경적 이유와 간절함과 절실함에 무감각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실정이다.     

 
착하게 살기 위해 교회에 다니고, 십계명을 지키며 사는 사람에게 ‘당신이 그렇게 살면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한다면 펄쩍 뛸 것이다. 전혀 죄를 짓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옥에 갈 만큼 큰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자들에게도 천국과 지옥의 문제가 관심 밖이 되어 있는 것은, 앞서 말한대로 교회 다닌 것으로 천국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교계에서도 지옥의 참혹한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추상적 지옥에 치우쳐 있기에 복음을 통해 구원받아야만 하고 또 그 복음을 증거해야만 하는 성경적 이유와 간절함과 절실함에 무감각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실정이다.

다시, 거듭 말하자면 죄인이 죽으면 반드시 가서 형벌을 받는 고통의 장소가 아니라, 현재 당하는 어려움이나 고난과 유사한 정도, 혹은 그 정도가 약간 더 심한 불편한 곳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분명히 기억하시길 바란다. 참된 신앙심이 없이는 영혼의 만족과 행복이 없다. 과학시대일수록 신앙이 더욱 필요하다. 참된 신앙이 없이는 인간 심령의 깊은 기갈에 만족을 줄 수가 없다. 또 진정한 깨달음 없이는 깊은 인생 문제를 깨달을 수가 없다.

자비를 거절하면 마지막에 공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 그때는 강제이다. 그러므로 아무런 타협도 소용이 없고 힘도 소용없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팔이 그를 지옥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영원히 죽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곳, 모든 것이 넘치도록 풍족한 곳, 여러분은 꼭 그곳에 가시길 바란다.

진정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죽음은 슬프고 두렵고 절망적인 것이 아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의 죽음은 오히려 더 큰 축복의 삶으로 이어지는 통로임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죽음 후에 열리는 영원한 삶을 바라보며 담대하게 살아가야 한다.

조현삼 목사가 쓴 생명의 편지와 절망적이었던 폐병과 투병하여 이기고 한국신학대학 학장으로 아름다운 일생을 살다 가신 김정준 목사님의 시 가운데 ‘내가 죽는 날’이란 시가 있어 소개한다.


 
조현삼 목사가 쓴 생명의 편지

▲ 지옥에도 불이 있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뜨거운 불이 있습니다. 그곳엔 뜨거움을 피해 뛰어내릴 창문도 없습니다.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곳입니다.  
 

 
예수를 믿는 결단이 없으면,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가지 아니하면,
지옥은 저절로 가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무관심 속에
지옥을 부인하며
지옥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지옥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어쩌면
내가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잠재 의식의 공포에
그 영혼이 지배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옥을
완강하게 부인합니다.


대연각 호텔에서
큰불이 난 적이 있습니다.
호텔 속의 사람들은 창문을 깨고
밖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뜨거운 불길이 덮쳐오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무모하게
뛰어내렸습니다.

지옥에도 불이 있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뜨거운 불이 있습니다.
그곳엔 뜨거움을 피해
뛰어내릴 창문도 없습니다.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곳입니다.

성경이 증거하고
사람의 양심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지옥은 분명 존재합니다.
천국이 분명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옥은 사람이 부인한다고
없어지는 곳이 아닙니다.
지옥에 들어간 다음엔
천국으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 믿는 길만이 지옥에서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길 외에 다른 길은
다 지옥으로 통합니다.

사랑하는 이여!
예수님을 믿으세요.
지금 이 땅에선 기회가 있습니다.

천국에 가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에 달려
당신의 죄를 대신 지신 예수
그분을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눈을 감고
천국에서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김정준 목사님의 ‘내가 죽는 날’

내가 죽는 날은 눈이 부시도록  햇빛이 비치어도 좋다 그것은 영광의 주님 품에 안긴 내 얼굴의 광채 보여 줌이라!   
 
 

내가 죽는 날!
그대들은 ‘저 좋은 낙원에 이르니’
찬송을 불러 주오
또 요한 계시록 20장 이하를
끝까지 읽어 주오
그리고 나의 묘패에는
이것을 새겨 주오
‘임마누엘’ 단 한마디만을!

내가 죽는 날은
비가 와도 좋다
그것은
내 죽음을 상징하는
슬픈 눈물이 아니라
예수의 보혈로 내 죄 씻음을
받은 감격의 눈물!

내가 죽는 날은
바람이 불어도 좋다
그것은
내 모든 이 세상
시름을 없이 하고
하늘나라 올라가는
내 길을 준비함이라

내가 죽는 날은
눈이 부시도록
햇빛이 비치어도 좋다
그것은
영광의 주님 품에 안긴
내 얼굴의 광채를 보여 줌이라!

내가 죽는 시간은
밤이 되어도 좋다
캄캄한 하늘이 내 죽음이라면
저기 빛나는 별의 광채는
새 하늘에 옮겨진 내 눈동자이리라


나를 완전히
주님의 것으로 부르시는 날
나는 이 날이 오기를 기다리노라
다만 주님의 뜻이라면
이 순간에라도 닥쳐오기를!
번개와 같이 닥쳐도
번개와 같이 함께 사라지기를!

그 다음은 내게 묻지 말아다오
내가 옮겨진 그 나라에서만
내 소식 알 수 있을 터이니
내 얼굴 볼 수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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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9/16 [15:01]  최종편집: ⓒ 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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