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남북회담과 아시안게임 방한 최고위층국방위부위원장, 노동당 정치국상무위원 꿰차 ‘군총정치국’은 군부 말단부터 최상부까지 감시 최고지도자 국장출신 절대적 신임 영향력 막강 ● 북한 권력서열 2위…판문점 회담 낯익어 북한 권력 서열 2위 황병서(黃炳誓, 75) 군총정치국장은 올해 들어 우리에게 부쩍 낮이 익은 인물이다. 파주시 DMZ에서 북한군이 매설한 목함 지뢰 폭발로 촉발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연이은 북한군의 서부전선 맞대응 포격 사건으로 비화된 일촉즉발 위기를 타결하기 위해 지난 8월 22일 판문점에서 양측 2+2 남북고위급 회담이 전격 성사되었는데 북한측 인사 중의 하나가 바로 황병서였다.
또 하나의 다른 화면이다. 지난해인 2014년 10월 4일 황병서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직책으로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차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방한 당시 건장한 당시 호위사령부 소속 경호원들이 황병서를 철통 경호한 모습이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 2014년 10월 4일 황병서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직책으로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차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 |
북한 수뇌부의 동향을 스크린 하는 관련 기관에서는 주요 인사들의 행보를 주목한다. 특히 김정은 최측근의 동행 여부를 주시하면서 이상 여부나 변동 여부를 판가름하곤 한다.
그런데 최근 황병서 군정치국장이 11월 11일 빨치산 출신으로 북한 혁명 1세대로 꼽히는 리을설 인민군 원수의 장례식 이후 3주 이상 모습이 드러나지 않아 구구한 관측을 낳았는데, 12월 3일 북 언론들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122호 양묘장 현지시찰 소식과 함께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수행했다고 보도하면서 22일만 공개석상에 모습을 나타내 의문은 일거에 풀렸다.
황병서와 2인자 자리를 놓고 라이벌이자 용호상박이었던 최룡해 당 비서의 행방을 놓고 관계 기관들 역시 촉각을 곤두세웠으나 현재는 지방협동농장에서 혁명화 사업(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북한은 당 간부 등이 비리에 연류되었을 경우 처형, 숙청, 추방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혁명화교육은 가장 낮은 단계의 처벌이다.
황병서 군총정치국장이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은 신병 치료차 해외에 체류하였다는 관측에 무게감을 실어준다. 올 12월 1일 싱가포르에서 척추수술을 받았다는 대북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가 나왔다. 지난해 10월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과 올해 판문점에서 열린 8·25 남북 고위급 접촉 때도 허리에 복대를 착용했다 한다.
● 김정은 모친과 깊은 인연…승승장구
▲ 올 1월 1일 김정은이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왼쪽)과 함께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참배하고 있다. | |
2014년 5월 1일 개최한 국제노동절 경축 근로자연회에서 황병서가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국장의 신분으로 축사를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바 있다. 이는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황병서가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직을 맡았음을 정식 선포한 것이다.
북한 군부 1인자인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최룡해에서 황병서로 전격 교체된 것이다. 황병서의 총정치국장 임명과 최룡해의 해임은 2014년 4월 26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주재로 열린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인민군 총정치국장 자리는 리영길 총참모장과 장정남 인민무력부장의 위로 북한 군부의 엄연한 1인자이다.
김정은 위원장 장례위원 명단 상위 50위 중 현재까지 28명이 숙청되거나 은퇴해 공개 석상에서 사라졌다. 김정은 제1비서 체제에서 인민무력부장은 벌써 7번째 교체됐다. 반면 장례위원 명단 123번째에 있던 황병서의 고속 승진은 놀랍기만 하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 2가지 존재한다. 황병서는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의 신임을 받아 김정은 후계 체제 구축에 앞장섰다. 조직지도부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생모 고영희가 생전에 그를 후계자로 내세우기 위한 물밑 작업을 추진할 때 손발을 맞췄고 이런 인연으로 김정은 제1위원장과 누구보다 가까운 인물이다.
또 하나는 장성택 숙청의 일등공신이라는 점이다. 황병서가 김정은 정권의 막강한 권력으로 등장한 것은 2013년 12월 장성택 숙청 뒤다. 황병서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마원춘 당 중앙위 부부장 등 함께 장성택 숙청을 주도한 '삼지연(三池淵)' 회동의 멤버였다.
▲ 황병서는 2014년 9월 25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3기 2차 회의에서 북한 최고국가기구인 국방위원회의 부위원장에 선임되면서 '2인자' 자리를 견고히 했다. | |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현지 수행에서 가장 많이 동행한 인사로 손꼽히는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김정일 체제에서 군 총정치국의 말단 장교로 출발해 노동당의 핵심인 조직지도부에서 군을 관장하는 과장, 부부장으로 활약했다.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조직부에서 잔뼈가 굵은 황병서는 2005년 5월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부부장에 오르면서 군부 실력자로 급부상한다. 2010년 9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임되었으며, 동년 9월 인민군 중장(우리의 소장), 2011년 4월 인민군 상장(우리의 중장) 칭호가 주어졌다.
2014년 3월,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승진했다. 동년 4월 15일 대장으로 승진하더니 11일 만인 26일에는 차수(次帥, 원수와 대장 사이의 계급)로 승진했으며, 5월 2일 북한군 제복군인 서열 1위인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에 임명됐다.
이어 황병서는 2014년 9월 25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3기 2차 회의에서 북한 최고국가기구인 국방위원회의 부위원장에 선임되면서 '2인자' 자리를 견고히 했다.
● 총정치국 군부 ‘감시·통제’ 핵심기관'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의 위상은 어느 정도이고 어떤 역할을 할까. 인민군 총정치국은 북한군을 직접 통제하는 노동당의 집행 기구다. 각급 부대에 설치된 산하기관을 통해 군의 말단조직부터 최상부층까지 감시한다.
총정치국을 군대의 정점으로 놓고 군단에서 연대까지 각급 부대에 정치부가 있다. 이들 정치부는 군의 당위원회 집행부서로서, 군 지휘체계 구조와 1:1로 대응하도록 조직되어 있다. 이는 총정치국이 당 산하 군부 내 정치·사상조직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북한 총정치국의 전신은 1948년 2월 인민군을 창설하고, 같은 해 9월 정권을 수립하면서, 1949년 5월 '민족보위성(인민무력부 전신) 문화훈련국'으로 군대에 당의 정치적 지도를 보장하는 북한군 각 중대에까지 조직된 문화부 기구 설치이다. 김일성은 문화부를 통한 군 지휘관 통제의 효율화를 도모하기 위해 1950년 10월 '민족보위성 문화훈련국'을 인민군 총정치국으로 개편한다.
▲ 최룡해 전 총정치국장이 항상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옆자리를 지켰고 단독으로 현장시찰을 다닐 정도였으니 총정치국장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오른쪽 최룡해, 왼쪽 황병서) | |
최룡해 전 총정치국장이 항상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옆자리를 지켰고 단독으로 현장시찰을 다닐 정도였으니 총정치국장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총정치국의 수반인 면면을 봐도 총정치국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조선일보는 총정치국의 위력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노동당의 2인자인 박헌영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초대 총정치국장을 맡으면서 그 위상은 급속도로 커졌다. 1953년 박헌영이 처형된 이후 소련계의 최종학이 총정치국장을 맡았다가 1958년 반혁명 종파 분자로 숙청됐다.
그리고 김재욱, 강상호, 최종학, 허봉학에 이어 리용무, 오진우, 조명록이 총정치국장을 맡았는데, 총정치국은 오진우가 1980년 10월부터 1995년 2월까지, 조명록이 1995년 10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각각 15년씩 최장수 총정치국장을 역임하면서 막강 위세를 과시하였다.
특히 조명록 총정치국장은 김정일의 특사로 2000년 미국 클린턴 대통령과 고위급 회담을, 2003년 4월에는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을 면담하는 등 외교와 안보 문제에도 직접 관여하면서 김정일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다. 그리고 김정은 제1위원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최룡해 총정치국장 후임으로 황병서가 그 지위에 오른 것이다.
황병서가 조직지도부에서 군을 담당한 경력이 최룡해보다 많아 북한군의 정치사상 활동을 통제하기에 더 부합된다는 평가이다. 총정치국장인 황병서는 과거 총정치국에 근무한 적이 있다.
또 노동당 조직지도부 군사담당 제1부부장을 역임해 총정치국의 사업에 정통한 인물이다. 황병서가 조직지도부에서 군을 담당하면서 군 요직 인사들의 치부나 약점을 꿰뚫고 있고, 군 요소의 정보망을 통해 감시와 통제를 하고 있어 김정은 제1비서가 군부의 장악력을 높이기에 최적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총정치국장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겸직하고, 총참모장, 인민무력부장보다 앞서 호명되는 것도 총정치국의 위상이 간단치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 황병서는 노동당 조직지도부 군사담당 제1부부장을 역임해 총정치국의 사업에 정통한 인물이다. | |
●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에도 올라 북한의 군 서열 1위인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라 북한 권력 서열 2위 자리는 요지부동 형국이다.
북한 조선중앙TV는 금년 4월 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대 22주년 중앙보고대회 소식을 전하면서 보고자로 나선 황병서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며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인 조선인민군 차수'로 호칭했다.
황병서는 군 총정치국장과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이어 금번 당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까지 꿰차게 됐다. 북한의 핵심 권력기관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그동안 최고지도자인 김 제1위원장과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룡해 당비서 등 3인체제로 유지됐다.
북한 매체는 올해 2월까지만 최룡해를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호칭했으나 이후에는 이 직책을 언급하지 않았다. 황병서가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확인됨에 따라 최룡해 당비서는 상무위원에서 물러난 것이 기정사실화된다. 이제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등 3인 체제로 개편된 것이다.
● 김정은 권력 분할구도…2인자 경쟁 당초 1949년생으로 알려졌던 북한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1940년생인 것으로 파악된다. 정보당국의 분석은 황병서가 1949년생이 아니라 1940년생에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 통일부의 '2014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에는 황병서를 1949년생으로 '2013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 등 2014년 이전 판에는 황병서를 1940년생으로 표기하고 있다.
황병서의 '1949년생 설'은 그가 비전향장기수로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하다 사망한 황필구의 아들일 수도 있다는 설이 제기되면서 본격화됐다. 황필구가 1959년 체포됐을 당시 막내가 10살이라고 말했는데 그 막내가 황병서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황필구와 황병서의 혈연관계가 객관 입증된 바는 아직까지 없다.
▲ 북한의 2인자인 황병서 군총정치국장이 비전향장기수로 대전 감옥에서 삶을 마감한 황필구의 아들일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 |
그런데 2015년 1월 5일 중앙일보 보도에서 관심을 끄는 대목이 있다. 중앙일보 보도 요지는 대략 이렇게 정리된다.
북한의 2인자인 황병서 군총정치국장이 비전향장기수로 대전 감옥에서 자살한 황필구의 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황필구의 고향인 전북 고창군 성내면 구슬마을 등지에 살고 있는 친척들의 증언 요지 중의 하나로, 복역 중이던 황필구는 면회 온 혈육들에게 “북에 장남 병순과 장녀 희숙, 막내 병서 등 3남매를 두고 왔다.”고 전해 들었다 한다. 체포된 1959년에 “막내가 10살”이라고도 했다. 1949년생인 황병서와 같은 나이다. 친척 A씨는 “필구 아재 장남(병순)과 장녀(희숙)는 어렸을 때 얼굴을 봤지만 북한에서 태어난 병서를 직접 본 적은 없다.”고 말한다.
황필구는 비전향장기수로 북한에서 추앙받는 인물이다. 황병서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제기된 황필구는 1916년 전북 고창군의 평해(平海) 황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익산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주오(中央)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당시 북한의 강원도 원산에서 검사로 일했다. 황필구는 6·25 전에 월북했다가 간첩으로 남파돼 1959년 체포됐다. 전향을 거부하다 체포된 지 26년 만인 1985년 12월 대전형무소에서 자율적으로 삶에 종지부를 찍었다.
황필구는 사망한 뒤 고향인 고창군 성내면에 묻혔다. 가족들이 유해를 거둬 형 한구씨의 묘소 옆에 묘비를 세웠다. 42년 태어난 큰아들 병순은 필구의 세 자녀 중 유일하게 평해 황씨 족보에 이름이 올라 있다.
군부의 제1인자 황병서는 김정은 체제의 권력 공고화가 한층 진행 중인 시점에서 롱런할 수 있을까? 김정은 체제의 파워 엘리트도 대폭 물갈이 조짐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자기 사람 심기’를 위한 인적실험과 세대교체를 김정은 시대 권력그룹 형성 과정의 특징으로 꼽는다.
이제는 빨치산 항일 투쟁그룹의 원로들이 퇴임하거나 숙청되면서 김일성 종합대학 젊은 엘리트들이 위용을 뽐낸다. 정치국 위원, 당 비서, 당 전문 부장들, 내각의 장관급 사람들을 분석해보면 김일성 종합대학 출신들이 34.6%로 가장 많고 지역적으로는 함경도 출신들이 45.6%로 약진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하의 북한의 권력구도는 2인자의 구축을 허용하지 않는 용인술을 심히 구사하고 있으며, 장성택 처형 후에 북한 정권 내에서 권력은 다각화 수순을 밟고 있다. 이를 두고 고모부인 장성택을 반역 혐의로 처단한 김정은 제1비서가 최고 권력을 위협할 수 있는 2인자를 용납하지 않으려고 권력 서열을 조정해 충성심 경쟁을 촉발시킬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정은 시대에서 이제 북한군 최고 요직은 황병서 총정치국장을 정점으로 리영길 인민군 총참모장,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삼각 편대로 형성됐다. 유심히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