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의사 르네 라에네크에 의해 발명된 청진기
19세기 여러 단계의 변화 지금의 청진기로 발전
신체에 닿는 부위는 ‘다이아프램과 벨로’ 구분돼
‘정상 폐음·심장음 범주’ 일탈한 소리 질병 유추
병원에서 의사를 만날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목에 걸려있는 청진기일 것이다. 한 때 양의사가 한의사의 청진기 사용을 반대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그 만큼 청진기는 의사에게 중요한 진단도구이자 하나의 상징이다.
청진기는 19세기 프랑스의 르네 라에네크에 의해 발명되었다. 당시 의학계는 소리보다 시각이나 촉각에 의존하는 진단법을 채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라에네크는 독특하게도 환자의 몸 속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는 의사였다.
그는 늘 환자 몸에 자신의 귀를 밀착하여 청진을 하였고, 이러한 방법은 스승인 코르비자르는 물론 동료 의사들에게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수많은 선각자들이 당시의 비웃음을 견뎌냈듯이 라에네크도 꿋꿋하게 청진법을 연구하였고 마침내 청진기를 발명하기에 이른다.
▲ 청진기는 19세기 프랑스의 르네 라에네크에 의해 발명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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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청진기를 발명하게 된 동기를 찾아보면 다소 웃음이 난다. 1816년 9월 4일 진료에 매진 중이던 라에네크는 심장에 문제가 있는 가슴이 풍만한 여성을 접하게 된다. 가슴의 살집 탓에 어떠한 방법으로도 심장의 운동 상태를 파악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처녀 가슴에 귀를 붙이기도 민망했을 것이다.
이에 그는 종이를 둘둘 말아 한쪽 귀에 대고 다른 쪽 끝을 환자의 가슴에 대었다. 그리고 바로 라에네크는 여인의 심장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세상에 청진기가 등장한 순간이었다.
그 후 청진기는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였다. 라에네크의 청진기는 굵고 일직선으로 된 원통의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1829년에 영국의 의사 코민스(Nicholas Comins)는 가늘고 휘어진 모양의 청진기(flexible stethoscope)를 선보였다.
또한 기존의 청진기는 귀에 대는 부분이 한쪽밖에 없었지만, 1852년에 미국의 내과 의사 캐먼(George Cammann)은 두 귀로 들을 수 있는 청진기(binaural stethoscope)를 고안했다. 캐먼의 청진기는 종 모양의 접촉부와 양쪽 귀에 끼울 수 있도록 두 개로 갈라진 튜브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어 1870년대에는 청진기에 소리를 확대하기 위한 마이크가 추가되었고, 최근에는 청진기와 컴퓨터를 무선으로 연동하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 진료용 청진기를 살펴보면 환자 신체에 접촉하는 부분이 앞·뒤로 나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평평한 부분인다이아프램(Diaphragm)과 움푹 패인 종 모양인 벨(Bell)로 구성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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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용 청진기를 살펴보면 환자 신체에 접촉하는 부분이 앞·뒤로 나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평평한 부분인 ‘다이아프램(Diaphragm)’과 움푹 패인 종 모양인 ‘벨(Bell)’로 구성되어 있다.
다이아프램에는 플라스틱의 떨림이 있어 100~1000Hz 주파수 범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는 기관지와 폐에서의 호흡상태와 장의 연동운동을 파악할 때 쓰인다.
벨의 경우 20~200Hz 주파수 범위의 소리를 들을 때 사용한다. 심장의 박동소리나 신체 곳곳에서 미세하게 발생하는 소리를 탐지할 때 쓰인다.
▲ 우선 청진기는 따뜻하게 덥혀놔야 환자의 신경을 자극하지 않는다. 그리고 방안의 소음을 제거하여 자그마한 소리까지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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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보통의 진료환경에서 의사가 청진기의 양면을 활용하는 법은 더 간소하다. 다이아프램으로는 폐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리와 정상적으로 운동하는 심장의 박동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벨로는 비정상적으로 운동하는 심장의 박동 소리나 잡음을 듣는다.
정확한 청진을 위해서는 준비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선 청진기는 따뜻하게 덥혀놔야 환자의 신경을 자극하지 않는다. 그리고 방안의 소음을 제거하여 자그마한 소리까지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또 환자에 체모가 있으면 물을 묻혀야 한다.
기본적인 준비가 끝나면, 폐와 심장에 따른 청진 방법을 수행한다. 우선 폐음을 듣기 위해서는 환자의 상의를 벗긴 후 의자에 편안히 앉아서 심호흡을 하도록 한다.
참고로 사람의 폐는 좌측 상·하엽 우측 상·중·하엽으로 나뉘어져 있다. 환자 흉곽의 전면부와 등 윗부분에서 상부엽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흉부 후부와 측부에서는 하부엽의 소리를 듣는다. 오른쪽 중간엽은 전면부에서 확인한다. 기본적으로 좌우 대칭으로 청진하여 소리의 차이를 구별한다.
정상적인 폐에서는 기관(器官)에 따른 명확한 소리가 들린다.
코와 폐를 이어주는 통로인 기관(氣管)에서는 매우 크고 높은 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속이 비고 거친 소리이며 흡기와 호기의 비율은 대략 5:6이다.
기관과 폐엽을 이어주는 작은 통로인 기관지(氣管支)는 크고 높은 음조의 속이 빈 관을 지나는 소리가 들린다. 가슴 정중앙에 있는 흉골의 가장자리 밑부분에서 들을 수 있으며, 흡기와 호기의 비율은 대략 2:3이다.
큰 중심 기도에서 들리는 기관지 폐포음은 중간 정도의 음조이며, 빈 곳을 지나는 산들바람 소리 같다. 흉골의 가장자리 윗부분에서 들을 수 있으며, 등에서는 날개뼈 사이에서도 청진이 가능하다. 흡기와 호기의 비율은 1:1이다.
공기의 흐르는 가장 마지막 부분인 폐포에서 들리는 소리는 중심기도를 제외한 흉곽 전체에서 들을 수 있으며 낮은 음조의 산들바람 소리이다. 흡기와 호기의 비율은 3:1이다.
호흡기의 상태가 정상 범주를 벗어나면 다양한 소리가 들린다. 탄산수의 기포소리인 Crackles, 좁은 공간을 통과하는 바람소리인 Wheezes, 그렁거리는 소리인 Grunting, 가죽을 비비는 소리인 pleural friction rub 등등의 소리들이 특정 병변을 추정할 수 있는 실마리 역할을 한다.
심장의 소리를 듣는 것 또한 매우 심오한 과정이지만, 폐음을 듣는 것보다는 다소 간단해 보인다. 우선 환자를 편안하게 눕게 하고,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때는 잠시 호흡을 멈추게 하는 것도 좋다.
심음은 제 1심음 , 제 2심음 , 제 3심음 , 제 4심음으로 구분되며 정상적인 심장에서는 쿵쾅·쿵쾅하는 제 1심음과 제 2심음만이 청진된다.
제 1심음은 심장에서 혈액을 전신에 보내기 위해 수축을 할 때 심장 내부의 해당 밸브가 닫히면서 나는 고주파의 소리이며, 좌측 흉곽에서 젖꼭지 안쪽에서 청진이 가능하다. 제 2심음은 심장이 전신으로부터 혈액을 받기 위해 이완을 할 때 심장 내부의 해당 밸브가 닫히면서 나는 고주파의 소리이며, 가슴 정중앙 흉골의 왼쪽 가장자리 상부에서 청진이 가능하다.
심장 청진에서는 정상에서는 들리지 말아야할 제 3심음과 제 4심음에 집중을 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심음은 좌측 젖꼭지 부근에서 청진하는 것이 좋고, 환자의 체위를 왼쪽이 위를 향하게 돌아눕게 해야 한다.
제 2심음 후에 연달아 들리는 제 3심음은 전신에 혈액을 보내주는 심장의 한 부위에 잔류 혈액이 있을 때 들린다. 이를 심울혈이라 하는데, 환자는 혈액 순환의 저하 소견을 보인다.
제 1심음 직전에 들리는 제 4심음은 전신에 혈액을 보내주는 심장의 한 부위가 두꺼워지고 경직됐을 경우 들린다. 보통 고혈압과 관상동맥 질환 시 청진된다.
청진은 의사들도 늘 어려워하는 분야이다. 따라서 아무리 간략하게 설명하였지만, 일반인이 위의 내용을 모두 숙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의사가 본인을 진단하는 과정의 의의를 대충이라도 알고서 치료에 참여한다면, 바람직한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정립되어 좋은 치유효과가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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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