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전쟁 영웅 5명의 흉상
최근 육군사관학교(육사)는 ‘교내 기념물 재정비’를 이유로 교정에 세워진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전쟁 영웅 김좌진, 홍범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철거를 시도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의혹의 중심에는 국방부와 국가보훈부 등 정부 부처가 관여한 것으로 짐작된다.
육사는 최근 충무관 앞에 설치된 독립전쟁 영웅 5명의 흉상을 철거해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독립기념관에 이전 보관이 가능한지를 공식적으로 문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기념물 재정비 이유에 대해 국방부는 ‘특정 시기에 국한된 독립군·광복군 흉상의 위치 적절성’과 일부 인사의 ‘소련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을 언급하고 있다.
지난 8월 25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을 대상으로 전쟁 억제를 하고 전시에 이기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곳에서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냐? 가능하면 육군 또는 육사의 창설과 관련된 역사적 인물들을 흉상으로 하는 방향이 좋겠다는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철거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5년 전 2018년 일제의 강압적인 식민지 정책에 항거하여 일어난 우리나라의 민족 독립운동인 3월 1일을 맞아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서 독립전쟁 영웅 흉상 제막식이 거행됐다. 육사 생도들이 훈련에 사용한 탄피 300kg(소총탄 5만 여발 분량)을 녹여 앞서 언급된 5인의 독립전쟁 영웅의 흉상이 제작된 것이다.
흉상 상단에는 독립군의 ‘압록강 행진곡’ 가사가 새겨져 있으며 하단에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9주년을 맞이해 후배 장병들이 사용했던 탄피를 녹여 흉상을 세우다’라는 문구가 있다. 한편, 흉상을 철거한 자리에는 한·미 동맹 공원을 만드는 방안과 백선엽 장군의 흉상 설치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8월 26일, 더불어민주당은 “독립영웅들에게도 공산주의 프레임을 씌워 독립운동의 역사마저 지우려는 것이냐”며, “윤석열 정부의 저열한 역사 인식이 통탄스러울 따름”이라고 맹렬히 성토했다.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국회의원과 이종걸 전 의원(이회영 기념사업회 이사장)도은 지난 8월 25일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흉상 철거는 무장 항일투쟁의 역사를 지우려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광복회장도 “국방부가 합당한 이유 없이 흉상 철거를 시도한 것은 일제가 민족정기를 들어내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우리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은 분노를 금할 수 없어 이를 항의하고 규탄한다”는 성명을 냈다.
김좌진 장군의 손녀 김을동 전 의원도 “대한군정서(북로군정서)는 임시정부 국무원령 205호에 의거해 설립돼 청산리대첩을 이끌었다. 임시정부 휘하의 군대인 북로군정서와 김좌진 장군은 대한민국 국군의 효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육사의 흉상 철기 시도를 용납할 수 없다는 분노감을 표출했다.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군·광복군 영웅 5인의 흉상 철거를 추진하자 여권 내에서도 ‘납득할 수 없다’는 비판이 일었다. 지난 8월 27일 홍준표 대구시장은 “홈범도 장군이 6·25전쟁을 일으켰던 북한군 출신도 아닌데, 이제 와서 논란이 되는가”라며 “항일 독립전쟁의 영웅까지 공산주의 망령을 뒤집어씌워 퇴출하려고 하는 것은 ‘매카시즘’으로 오해받는다. 그건 아니다”라고 쓴 소리를 아끼질 않았다.
유승민 전 의원도 “윤석열 정권의 이념 과잉이 도를 넘고 있다. 친일매국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눈 감고 이들 인사에 대해서는 일제 강점기 이력까지 끄집어내어 매도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이념 편향과 이념 과잉 아니겠느냐”고 비판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과연 이들의 항일 항적이 어떤 문제점이 객관적으로 노정되어 있었는지? 그 진위여부를 엄중하게 살펴보아야 할 역사적 책임의식을 통감한다.
● ‘백선엽‧박정희’ 비애국적 행태
흉상의 다섯 인물 중 지청천은 대한민국반공통일연맹 최고위원과 이승만 정부의 초대 무임소장관을 역임했으며, 무엇보다 대한민국 국군의 전신인 한국광복군의 총사령관을 지낸 인물이다.
김좌진과 이범석은 평생을 반공주의자로 살았던 인물이며, 특히 김좌진은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사람에게 암살당했을 정도였다. 특히 이범석은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으로서 대한민국 국군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다.
공산주의 경력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은 홍범도 정도이다. 그러나 홍범도 장군조차도 박정희 대통령이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1962년에 이미 건국훈장을 수여한 바 있다. 또한 2018년 취역한 해군의 잠수함에도 홍범도 장군의 이름이 붙어 있다. 해군은 주로 독립투사의 이름을 잠수함에 붙여 왔다.
또한 ‘흉상의 위치 적절성’을 언급한 국방부의 청사 내에도 홍범도 장군 흉상이 있다. 2022년 4월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합참 청사 앞으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설치되었다. 국방부 청사 입구에는 홍범도 장군 외에 안중근·윤봉길·이봉창·강우규·박승환 등 독립투사 및 순국지사 6명의 흉상이 함께 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육사 교정에 대신 설치되는 흉상은 백선엽장군이다. 백 장군은 지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펴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에 “1941년부터 1945년 일본 패전 시까지 일제의 실질적 식민지였던 만주국군 장교로서 침략 전쟁에 협력했고, 특히 1943년부터 1945년까지 항일 세력을 무력 탄압하는 조선인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 장교로서 일제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와 함께 육사 경내에는 ‘내 생명 조국을 위해’라는 호국비와 ‘호국간성(護國干成)의 도장(道場)’이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휘호가 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밝힌 논리대로라면 남로당 가입 이력이 있는 박 전 대통령의 이 휘호들도 전부 철거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홍범도만 문제 삼는다면, 이는 명백한 이중 잣대인 것이다.
● 국군의 역사 부정 ‘반(反)헌법적 처사’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20년을 ‘독립전쟁 원년의 해’로 선포하고 독립전쟁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지원했다. 1920년대 만주 지역에서 일어난 봉오동·청산리전투는 일제에 당당하게 맞붙어 싸운 자랑스러운 우리의 독립전쟁이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우리 대한민국 헌법에서 바로 임시정부의 군제가 바로 국군의 역사인 것이다. 그럼에도 흉상 철거 시도를 강행한다면, 이는 국군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반(反)헌법적 행태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2018년 독립전쟁의 주역인 김좌진, 홍범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선생 등 다섯 분의 흉상을 육사에 건립한 것은 독립군과 광복군의 정신을 계승해 육군사관학교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국방부 못지않게 국가보훈부도 反역사의식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독립정신의 계승과 호국정신의 발전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소홀하다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만주군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백선엽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표현을 삭제했다
또한 여운영 선생과 홍범도 장군의 서훈을 문제 삼으면서 최근 광주 출신 중국 혁명음악가 정율성에 대한 광주시의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보훈부가 거세게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란 분석의 굴레에서 탈출해야만 한다.
이번 철거시도 행보는 독립영웅들에게도 공산주의 프레임을 씌워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에게 모멸감을 심는 행위로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독립전쟁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과 계승 작업은 대한민국 헌법정신과 국군의 역사적 뿌리를 제대로 확립하는 일이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주무 장관이 철거 계획 백지화를 국민들에게 밝히고, 혼란을 야기한 책임자를 찾아내 엄중 문책하기를 촉구한다. 아울러 이번 독립유공자 흉상 철거를 시도한 주체와 배후인물들에 대해서도 국회차원에서 진상규명이 착수되어 논란이 조기에 종식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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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