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효 처방! ‘체계적으로 차분하게’
약 10여 일이 지난 11월 6일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국내 증시에 상장된 모든 종목의 공매도가 전면 금지되었다. 이번 공매도 전면 금지는 기존에 공매도가 가능했던 코스피200, 코스닥 150지수 350개 종목을 포함해 유가증권과 코스닥, 코넥스 시장 전 종목에 걸쳐 공매도가 예외 없이 차단된 것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전날 5일 금융위원회를 열고 “자본시장 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장을 조성해 투자자를 보호하고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것”이라며, “공매도 제도가 모든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제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팔았다가 후일 주가가 내리면 싸게 사서 갚아 이익을 내는 투자 기법이다. 주가가 내려야 차익을 얻을 수 있는 특성 때문에 개인투자자 사이에서는 주가 하락의 주범으로 꼽혀왔다. 이처럼 공매도는 기본적으로 주가에 하락 압력을 가하는 요인이 됨을 이유로 규제당국은 대체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고, 사회적인 여론 또한 다르지 않았다.
특히 공매도 금지는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된 사안이다. 임상시험 성공 여부 등의 정보에 주가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주가 급등락 폭이 큰 제약‧바이오 기업의 경우, 공매도의 주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바이오 기업에 투자한 개인 주주들의 주장이다. 벤처캐피탈(VC), 벤처투자자들 또한 이러한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자신이 투자한 종목의 가격이 공매도 세력의 투자와 해당 기업의 부실 정보 공개 등으로 하락하는 사례를 경험하며 외국인 및 기관 투자자의 강력한 힘 앞에 무력함을 여실히 느꼈다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대형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대규모 불법 공매도가 적발되고, 주식 매매 시스템의 허점을 악용해 주식을 실제로 빌리지 않고 자행해온 ‘무차입 공매도’는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이들 폐지 여론을 가속화 시켰다.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이 있었던 기존 공매도 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불법 무차입 공매도 실시간 차단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공매도 전면 금지 하루만에 약효는 예상대로 적중했을까? 하루 만에 그친 공매도 금지 효과에 투자금 회수 시기를 놓친 투자자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2차전지주 위주로 숏 포지션(공매도)을 잡아뒀던 투자자들은 황급히 처분에 나서며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공매도 금지가 단기간 이슈가 아닐 것으로 판단한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공매도 전면금지 조치후 10일이 경과된 지난 16일 협의회를 열어 일단 처방책을 내놓았다. 먼저 중도 상환 요구가 있는 기관의 대차 거래에 대한 상환 기간을 개인의 대주 서비스와 동일하게 90일로 하되,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개인의 대주담보비율(현행 120%)도 기관과 외국인의 대차와 동일하게 105%로 낮춘다. 기존 개인투자자는 공매도 때 빌린 주식 금액 대비 보유해야 할 담보총액 비율을 120% 이상 유지해야 하지만 기관과 외국인은 105%를 적용받고 있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이 계속 제기됐다.
● 공매도 실효성 ‘정교하게 수술해야’
공매도(空賣渡)란 보유하고 있지 않은 자산을 매도하는 거래로서 개인 혹은 단체가 주식, 채권 등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하는 행위를 말한다. 향후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뒤 차후 실제로 주가가 하락하면 같은 종목을 하락한 주가로 되사는 방법으로 차익을 얻는 매매기법이다. 정밀한 예측과 많은 자금이 필요해 개인보다는 기관 투자자들이 주로 사용한다.
이처럼, 공매도는 전 세계 다수의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주식 투자 방식이다. 다만 경제 위기나 침체기에 주식시장의 하락을 막기 위해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경우, 공매도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났던 2008년 10월 1일부터 2009년 5월 31일까지, 유럽 재정위기 영향으로 2011년 8월 10일부터 그해 11월 9일까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년 3월 13일부터 2021년 4월 30일까지 세 차례 금지된 바 있다. 그 이후에는 부분적으로 재개되었다.
공매도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존재하나, 시장 가격 형성을 원활히 하고,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투자수단을 제공하며, 위험회피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장점 또한 가지고 있다. 따라서 공매도 규제의 프레임은 이러한 공매도의 이점을 고려하여 공매도의 순기능은 살린 채 그 역기능은 최소화하고자 하면서 전면 금지에서 선별적 허용 및 공시규제로 변신을 추구해왔다.
그러니 한국의 금융 책임자가 공매도 금지를 전면 찬성한다는 논거를 국내외 시장에 공식 천명하기에는 매우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당초 공매도 금지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외국인 투자가 중요한 나라에서 외국에서 아무도 안 하는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시스템을 만들어서 거래를 어렵게 만드는 게 과연 개인 투자자를 보호하는 이런 정책인지 저는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10월 11일, 김주현 금융위원장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윤석열 대통령은 김주현 금융위원장을 조만간 교체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직접 주식 공매도 전면 금지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 선진국 지수 편입 ‘차질없어야’
공매도는 버블을 방지하고 주식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순기능을 갖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는 공매도 제도에 대한 반감과 함께 공매도 금지로 주가가 향상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일부 공유돼있다. 하지만 이런 인과 관계가 실증된 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매도 금지가 앞으로 주식시장에 미칠 영향의 득실에 대해서는 증시 전문가들의 반응이 엇갈린다. “공매도 금지 조치는 투자자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의 장기적인 유입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특히 외신들은 공매도 금지가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어렵게 할 거라고 예측한다. 다수의 선진 시장에서는 공매도 제도를 마련해두고 있으며, 그간 공매도 규제에 대한 불확실성 해소가 선진국 지수 편입의 고려 요인 중 하나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MSCI 지수는 미국의 금융지수 정보제공 회사인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이 제공하는 여러 지수 중 선진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종목으로 구성된 주가지수이다. MSCI 선진국지수에 편입된 국가는 명실상부한 ‘선진 주식시장’으로 인정받는다. 글로벌 펀드들이 이 지수를 참고해 투자하기 때문에 MSCI 선진국지수에 편입이 되면, 글로벌 자금 유입액도 훨씬 많아진다.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은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다.
공매도 투자자 대다수는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이다. 따라서 공매도 금지로 외국인 투자자 자금 이탈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한국 시장의 신뢰도 저하로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 주식시장 참여가 제약될 거라는 견해도 무시할 수 없다. 그 근거는 어떤 수치와 통계로 실증할 수 있을까?
실제로 공매도 전면 금지가 시행된 당일 역대 최대 상승폭을 보였던 국내 증시가 하루 뒤 크게 떨어지며 큰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코스피·코스닥지수가 공매도 전격 금지 조치가 시행된 지 5거래일 만에 사실상 제자리로 돌아왔다. 특히 코스피 거래 대금은 2조 원 넘게 줄어 금융투자 업계는 단편적 증시 부양책이 약발을 내기보다는 부작용만 크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시장경제를 도외시하는 대중영합적 정책이 한국 증시의 신뢰도만 떨어뜨렸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증시 접근성을 제한시킬 것이란 우려가 생생하다. 공매도 활용 빈도가 높다고 볼 수 있는 외국인이 국내 증시 순매도를 보이는 경향이 뚜렷해진 것이다.
통계학적으로 볼 때, 역대 공매도 금지기간 중 외국인 매매 추이를 살펴보면 외국인 순매도세가 강했다.
2008년(2008년 10월 1일~2009년 5월 31일)에는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이 4조1000억원을 순매수했다. ‘코스닥 시장’에선 외국인이 2008년 1조3000억원, 2011년에는 1조원, 2020년에는 2000억원 순매도했다. 거래대금 기준으로 매매 비중까지 산출해보면 공매도 금지 조치 시행 이후 외국인 거래 비중이 급감하는 모습이 재차 확인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공매도 전면 금지 및 글로벌 IB 10여 곳의 불법 공매도 여부 전수조사가 달가울 리 없다. 요체는 포퓰리즘를 엄격하게 지양하면서, 체계적으로 정교하며 신중하게 접근해야만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 회복을 담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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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