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최근 대한민국 영토에 일명 ‘똥풍선’이라는 오물풍선을 대거 살포했다. 거름, 쓰레기, 분뇨, 폐건전지 등이 담긴 오물풍선 가운데에는 차량 유리를 파손할 정도로 위협적인 것들도 있었다.
9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까지 북한이 총 330여 개의 오물 풍선을 띄운 것으로 식별됐다. 이 중 실제로 떨어진 풍선은 80여 개다. 다만 전국적으로 오물 풍선 피해가 보고된 1·2차와 달리 이번 피해는 수도권 위주로 관련 신고가 접수됐다. 발견된 장소도 제각각이었다. 인천 중구 연안부두 앞바다와 서울 잠실대교 인근 한강에서도 오물 풍선이 관측됐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28~29일과 이달 1~2일 등 1·2차에 걸쳐 대남 ‘오물 풍선’을 투하했다. 당시 각각 260여 개와 720여 개의 오물 풍선이 발견됐다. 이후 북한은 오물 풍선 살포를 잠정 중단한다면서도 다시 대북 전단이 날아온다면 이전 대비 100배의 양에 달하는 휴지와 오물을 다시 살포하겠다고 위협했다.
이후 국내 탈북단체들은 이달 6~7일 대형 풍선에 대북 전단 등을 달아 북한으로 살포했다. 지난 6일 새벽 1시 탈북민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에서 보낸 대북전단도 대남전단과 동일한 방법인 바람을 이용했다.
대북풍선을 보내기 전 자유북한운동연합은 바람의 방향이 북쪽으로 바뀌면 바로 살포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날 자유북한운동연합은 대형풍선으로 대북 전단 20만장을 살포했는데 여기엔 가요·드라마 등을 담은 이동식저장장치(USB) 5000개와 미국 1달러 지폐 2000장이 들어있었다.
북한은 예고한대로 대남 오물 풍선을 다시 뿌렸다. 이에 정부는 휴일 대통령실 주관 NSC 상임위를 소집해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고 즉각 대응에 나섰다.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라는 강수를 두기로 한 표면적 원인은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 살포다.
북한의 오물 풍선의 배경에는 남측 민간단체가 ‘표현의 자유’란 명분으로 추진해온 대북전단 살포가 있다. 대북전단은 남북 간 위기를 증폭시키는 소재였다. 북한은 2020년 6월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을 문제 삼으며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2021년 3월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기본법)’을 시행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는 해당 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후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는 재개됐다.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제지하지 못한다며 내세우는 근거는 민간단체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의 ‘강수’ 반격이 오히려 국민의 안전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군사분계선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바람이 부는 시기가 한정적이어서 북한이 오물 풍선 살포를 지속하기는 어렵다. 우리 민간 차원의 일을 정부와 군 차원으로 끌어올릴 경우 긴장 강화라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최근 국내 탈북자단체가 살포하는 대북전단은 북한 주민의 설득, 남한 체제 과시보다 김 위원장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북한이 대북전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북한은 체제훼손과 존엄모독을 결코 좌시하지 않는 ‘북한의 특수성’ 때문이다.
탈북자 단체에서 남풍에 실어 보내는 풍선에는 1달러 지폐와 생필품 등과 함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이른바 ‘백두혈통’이라 불리는 북측 지도부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담은 선전 삐라가 담겼다. 조선왕조와 일본 군주제의 숭배 방식을 모델로 만든 백두혈통의 상징체계를 체제의 근간으로 여기는 북한에 대북 전단은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다. 어떠한 고성능 폭탄보다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위험물로 여긴다.
미국이 한국전쟁 때 삐라를 뿌린 것은 2차 세계대전 경험 때문이었다. 드와이트 D.아이젠하워 장군은 유럽 전선에서 80억장의 삐라를 뿌렸다. 미국이 삐라를 많이 뿌린 것은 20세기에는 전쟁의 형태가 국가의 모든 능력을 쏟아 붓는 ‘총력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6·25 기간 미군은 수억 장에 달하는 삐라를 수송기나 폭격기를 통해 한반도 전역에 집중 투하했다. 한국어와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로 된 삐라도 뿌렸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 무차별 투척이었다.
남북 간 전단 살포는 한국 전쟁을 시작으로 활발히 이뤄졌다. 당시 유엔군이 심리전 차원에서 북측에 전단을 뿌렸고, 북한도 유엔군을 대상으로 전단을 살포했다. 휴전 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까지 뿌려진 전단은 총 28억장. 남한과 유엔군이 25억 장, 북한, 소련 등이 3억 장을 뿌렸다. 한반도 전체를 20번 이상 덮을 수 있는 분량이다.
당시 삐라는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비방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내용 자체는 설득력이 크지 않았지만 삐라가 적군의 심리를 흔들어 전쟁에 끼치는 영향이 그만큼 컸기 때문에 양쪽 모두 전력투구했다.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화와 번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한결같은 지향을 담아 한반도에서 역사적인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뜻깊은 시기에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하였다.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
그러다 지난 2020년 6월 북한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탈북자 단체의 전단 살포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대북전단 살포 문제가 남북 관계의 주요 현안으로 등장했다. 김 부부장은 당시 개인 명의로 낸 담화문에서 한국 정부가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고 애초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못하게” 하지 못하면 남북관계는 더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로 인해 화해모드였던 남북 간 관계 경색 문제가 불거지자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은 이른바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불린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금번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는 물리적 충돌 위험을 높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과거 우리가 대북 방송을 재개하면 북한군은 확성기를 향해 직사화기를 쏘고, 우리 군도 대응 사격을 하는 등 여러 차례 군사분계선상의 충돌이 빚어진 바 있다. 북측은 확성기 방송에 거칠게 반응해 온 만큼 서북 도서 등에서 복합 도발을 일으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이 “새로운 대응”의 일환으로 군사 도발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포격 도발이나 드론을 활용한 도발 등에 나서면 국지적 충돌로 번질 가능성이 커진다.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이 전면 정지되고 남북 간 연락 채널도 지난해 4월부터 끊긴 상황이다.
최근 북방한계선(NLL) 북측에서 꽃게잡이를 하던 중국 어선들이 조업을 중단하고 빠져나갔다는 보도도 있다. 정부는 북측의 군사도발 가능성에 만전의 대비를 하는 한편으로 오물 풍선 차단 대책도 확실히 해야 한다. 남북 긴장 고조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만 내세울 게 아니라 탈북민단체와 대북 전단 자제 협의도 분명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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